나는 예쁜 항아리를 그리는 것이 아니다. ​ “예쁨은 아름다움의 적이기 때문이다.” -페르낭 레제- ​ ‘항아리’ 라는 말은 우리말의 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르완다어’  ‘가장놓은 (hanga) 처녀(ari)’를 의미하는 ‘hangari’에서 유래했다. 즉, 다산을 할 수 있는, 풍요로움을 가져올 ‘엉덩이가 풍성하고, 허리와 허벅지는 가는, 보기좋은 처녀를 ’hangari‘ 라고 했다. ​ 그러나, 세잔이 사과를, 다른 사과들과 다르게 그렸듯이, 나는 진부하게  매끄럽고, 예쁜 모양의 항아리를 그리는 것이 아니다. ​ 나는 지금 이 순간, 유한한 삶의 한 가운데에서  내가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때로는 멍들고 깨지면서도 놓지 못하는  소중한 삶의 의미를 붙잡아, 그 삶의 본질을 캔버스에 가장 아름다운 항아리의 이미지와 함께 추출 (abstract)해 놓으려 한다. ■ 김 재 석

이번 전시는 박진희 작가의 첫 개인전으로, 진채화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 전시됩니다. 박진희 작가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였으며, 동양화의 전통적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진채화를 통해 자연과 감정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진채화는 동양화의 섬세한 붓 터치와 함께 보다 풍부한 색채감과 표현력을 담아내는 현대적인 기법으로, 박진희 작가는 이 기법을 통해 자연의 다채로움과 생명력을 작품 속에 담았습니다. 작가는 31년간의 미술 교사 경력을 바탕으로 예술 교육과 창작 활동을 병행해 왔으며, 이번 전시는 그가 작가로서의 새로운 도약을 시작하는 중요한 전시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일상 속 자연을 소재로 하여, 감, 포도, 모란, 자작나무와 같은 친숙한 자연의 요소들이 주요 모티브로 등장합니다. 이 자연물들은 단순한 묘사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시간의 흐름과 기억, 그리고 감정을 함께 표현하며, 상상 속 요정들이 등장해 동화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합니다. 진채화의 특징인 풍부한 색감과 투명한 색채의 레이어링을 통해, 작가는 자연의 섬세한 변화를 생동감 있게 표현합니다. 동양화의 전통적 기법과 현대적 해석을 접목한 그의 작품들은, 관람객에게 자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평온함과 따뜻한 감정을 전달합니다. 특히 그의 작품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넘어, 그 안에 깃든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며, 이를 통해 작품 속에서 관람객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합니다. 박진희 작가에게 이번 전시는 그동안의 예술적 여정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작업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동양화의 현대적 해석인 진채화라는 기법을 통해, 그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며, 관람객들이 작품을 통해 위로와 힐링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전시가 앞으로 작가의 더 깊고 넓은 예술 세계로의 발돋움이 될 것임을 기대하며, 많은 분들이 그가 그려내는 자연 속 이야기에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박 진 희

고통스러운 현실 앞에서 나는 매몰됐다.  오롯이 한 가지 질문만 남았다.  '왜 살아야 하나' 이렇게 고통스럽고, 무의미해 보이는 시간들에, 나는, 우리는, 왜 삶을 이어가야하나. 나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타인에게까지 흘러들어가는 내 고통을, 굳이 살아서 지속해야할 이유가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부정이, 켜켜이 쌓여 나를 꽉 채웠다.  '죽는 게 가장 나은 결정이다.' 그렇게 생각이 결론에 다다를 즈음, 누군가 붙잡았다. 당신은 내게 첫날부터 말했다. '열심히 살았던 삶이, 열매를 맺을 거에요' 그게 무슨 말일까.  불쑥 내면으로 들어온 그 말이, 그 문장이 가슴 깊이 돌아다녔다.  '열심히 살았던 삶이 열매를 맺는다.- 열심히는 뭐고, 열매는 뭐지.' 나는 5년이 지나서야- 그말에, 그대에게, 작은 맞장구를 칠 수 있다. 결국에 모든 시간이 쌓여 이야기가 되어 돌아왔다.  헛되어 보인 시간이 '이야기열매'로 맺혔다. 나를 애워싸던 고통이 고통의 색깔 그대로 이야기가 되어 단단한 땅과 뿌리가 됐다. 그 단단한 내면은 나에게 타인을 어루만지고, 나와 당신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릴 수 있게 해줬다. 그림으로 그려진 이야기들은 우리의 시간과 삶에 귀중한 이름을 갖게 해줬다.  이름이 있는 삶은 존재할 힘을 갖는다. 스스로 자생하며 살아낸다. 유의미한 이름이 있기 때문인다. 나는 지금 스스로의 삶에 이름을 붙이려 한다.  내가 공들인 시간부터, 늪에 빼앗긴 시간과 허망하게 흘려 버려진 시간까지- 모든 시간에 이름을 붙여,  존재할 힘을 주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하루를, 일주일을, 한달을, 일년을. 어쩌면 더 긴 시간을 살아낼 수 있을거다. 그러다 보면 서로를 부둥켜 안고 위로와 사랑을 나눌 기적을 맛볼지 모른다.  그런 기대감 하나로도 충분히 우리는 말하고 이야기하고 그릴 수 있다. 죽지않고 살 수 있다.  ​ 희미하지만 존재한다는 그 자체로 우리는 살아도 된다.  살아서 나와 너의 이야기를, 이름을_ 남겨 다른 이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죽지않고 살기로 선택한 우리가_ 죽기까지 살아낸 별볼일 없는 일생이_ 존재 자체로 의미있는 삶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그 이야기가 지금 여기 있다.  ​ 그러니 그대여 죽지 말고 살아서 명을 다하라. 평범하지도 못한 버러지 같은 자신의 삶을 끝까지 감당하며 살아내라. 내몰리듯 버티는 모든 삶이 가장 가치있다는 것을 보여달라. ​ 그 마음으로,  당신이 살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작업을 시작했다.  그 간절함이 그대에 마음에 가닿기를. 바라고 또 바래본다. ■ 문 보 라

自給自足 오만한 인간은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지구상에서 가장 발달한 존재로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그 발달이 과연 지구와 공존하는 길이었을까요? 전시 "자급자족(自給自足)"은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합니다.   인류 멸망 이후의 세상, 인간이 남긴 유산을 이어받아 새로운 형태의 문명이 태어납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존재를 증명하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기계 동물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도움받을 누군가를 찾지 않습니다. 오로지 스스로 충족하며 자급자족의 삶을 이어갑니다.   이번 작품들은 그들의 이야기와 흔적을 탐구한 기록입니다. 그 속에는 인간의 그림자와 함께, 인간이 남긴 가능성의 조각들도 담겨 있습니다. 이 전시가 관람객들에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가능성의 미래를 잇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를 바랍니다. ■ 곽 한 승